처음 아메리카노를 만났던 때가 생각난다.
'와, 쓰다. 이걸 왜 먹지?'
물론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지경이지만
그때는 그랬었다.
옆에 있던 여자 친구(지금은 아내)가
'아직 인생의 쓴 맛을 덜봐서 그래...'라고
농담을 던졌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영 틀린 말도 아닌 듯 하다. ㅎㅎ
이제는 하루에 커피를 많게는
6잔씩은 먹고 있는데(업무상 과다복용도 한몫함)
이 정도면 거의 들이 붓는 수준인 거 같다.
단순히 쓴 맛에 적응했다기 보다는
모든 커피가 쓰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점이 나의 생각을 바꾸게 해 주었다.
예전 직장에 커피 맛에 일가견이 있던 선배를
따라서 고급진 핸드드립 커피를 만나보고
신세계를 경험했었다.
나에게 커피란 그저 '탄 콩을 우려낸 쓴 물'이었다.
단지 내가 몇 번 경험한 좁은 사고에서
'커피는 쓴 거야. 나랑은 맞지 않아'
이렇게 단정 짓고 있었을 뿐이었다.
딱히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날 만난 드립 커피로
'커피라고 다 쓰기만 한 게 아니다'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다양한 커피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보는 눈도 상당히 달라지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글을 쓴다는 것도
마치 커피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내가 커피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름 좋아하는 원두나 맛의 취향이 있듯이
글쓰기 전문가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책이나 글의 취향이 있는 것처럼.
사실 커피 취향이란 것도
여러 가지 커피를 먹어보고 나서야
생기는 일종의 경험치 같은 것인데
글을 쓴다는 것도 비슷한 구석이 많다.
여러 가지 종류의 글을 읽어보고
때로는 내 입맛에 맞게 써보는 경험들이
취향을 만들어 내는 거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원두와 로스팅,
블렌딩 법, 추출법 등을 통해서
다양한 맛을 만들어 내는 커피처럼.
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자기 만의 경험과
생각을 담아내는 글이야 말로
어쩌면
카페인보다 진한 중독성을 갖지 않을까?
자기 전 오늘의 마지막 커피를 한잔 내려본다.
이제 커피는 쓰지 않다.
언젠가 나의 글도 커피처럼 쓰지 않고
맛깔나게 쓰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