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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봄/일상써봄

#220404 - 짓기의 즐거움.

새삼스레 생각이 난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 손으로 밥을 짓게 된 날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로 기억한다.

어머니가 몸살로 앓아누우셨는데

철이 없어 집안일을 도울 줄 몰랐던 나는

무작정 생각난 게 '밥'을 지어야 된다고 여겼나 보다.


출처: Pixabay



쌀을 3번 헹구어내고 물을 부어서
손등까지 올라오게 물을 맞추고,
압력솥 뚜껑을 꽉 잠그고 나서
솥의 추를 바로 세우고 센 불로 15분 가열한다.
솥의 추가 빙빙 돌면서 기포가 올라오면,
불을 약하게 줄이고 잠시 기다린다.
이제 불을 끄고 속으로 3분을 세고
추를 숟가락으로 톡 쳐서 김을 빼낸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전부였다.

다행스럽게도 처음치고 밥은 잘 만들어졌고,

그때 느낀 뿌듯함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때 지은 밥이 생에 가장 큰 효도였기 때문...?)

그리고 집에서 지금도 밥을 짓는 날은

자연스레 그때와 같은 방법으로 만들고 있다.

다만 전기밥솥이라는 것이 차이점이랄까? ㅎㅎ


참 이상하다.

분명 같은 '짓기'라는 녀석인데

지금 하고 있는 '글짓기'는 '밥 짓기'와 다르게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왜 그럴까? ㅎㅎ

밥 짓기는 어깨너머로 보고 배울 어머니가 있었고,

글짓기는 그럴만한 곳이 없어서 일까?


출처: Pixabay


곰곰 생각해보니 알 것도 같다.

단어의 차이는 그저 밥과 글이라는 단어일 뿐이다.

근데 글은 어렵고, 밥은 아니다?

(그렇다고 배달음식 안 시켜 먹진 않는...)

어쩌면 '짓기'라는 행위 자체를 익숙하고 즐겁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상태가 걸림돌인 것 같다.

마치 개학 전날 꾸역꾸역 밀린 숙제를 하면서

'방학은 쉬라고 만든 건데 이 딴 게 다 뭐냐고!'

투덜대는 것과 같아 보인다고나 할까.


이전에도 비슷하게 글쓰기를 해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와는 조금 다른 기분이다.

마치 숙제처럼 하는 기분이 들면서도

즐겁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전과 다른 점은 조금 더 부담을 내려놓고

'짓기' 자체를 즐겨보자고 되뇌이고 있다는 것.

그것 뿐인 것 같다.

사실 이 글의 제목도 중간까지 써내려오면서

바꾸게 되었다.

'짓기의 어려움'에서 '짓기의 즐거움'으로.

제목부터 어려움이라고 쓰고 적다보니

즐거울래야 즐거울 수가 없을 것 같았는데

중간에 즐거움으로 바꾸어서 그런지

마지막 타이핑이 한결 가볍다.

아니, 꼭 오늘 숙제를 마쳐서 그런건 아니다.

오해는 없으시길...